By Nellie Eun-Hee S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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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mma,

I miss you. I love you. I’m sorry. I’m sorry you had to give me away and were likely forced to make an impossible decision that wasn’t really a decision. I’m sorry Korean society was/is so inhospitable that there wasn’t a way for us to stay together. We should have been able to stay together. I came home to Korea in college and looked for you. The agency had no information about you. I came back after college to learn about your country, our country. I stayed a year. I learned a little Korean. I should have learned more. I wanted to be able to talk to you if I found you. Korea was strange at first but I fell in love my motherland. I discovered I love norae bang, dukboki and yookgaejang. I loved wondering around the markets blending into the crowd for the first time. Insadong was my favorite. I learned Korea hasn’t been supportive for pregnant unmarried women and has different ideas about what it means to be family. Many women carried babies and gave them up in secret. I feel no anger or resentment for you, only anger at Korean society for not supporting you and all the mothers who were forced to give their babies away.

I am fortunate to have two homes. I have had a very good life in America and think you would be proud. My family was loving and took good care of me. I had a good education and was given many wonderful experiences. You have three beautiful grandchildren and a wonderful son in law. I wore hanbok at my wedding and had a dol celebration for each baby. Their names are Wonhae, Wonmee and Wonjin. Now that I am an Omma too, I can’t imagine the heartache you went through. I long to meet you and for you to meet your grandchildren and son in law. When each of my babies was tiny, I thought of you often. Sometimes I would hold them tight and cry thinking about you. I am so sad you have had to live with the burden of not knowing what happened to me. I can’t imagine that pain. I wish there was a way to tell you I am okay and don’t worry.

You are probably getting older now and I wish I was there to help take care of you. Sometimes when I look at my children, I can’t believe they are mine. I always wanted a family member who looked like me. I wonder if I look like you. I wonder if they look like you. You would love them. I hope you are content. I hope you are not mad at me. I don’t blame you if you were. I hope you too have had a good life and that my existence has not hindered you in any way. I hope you are happy. You truly deserve to be happy.

Omma, I miss you, I love you and I’m sorry.


Nellie Sung/Eunhee Sung

Adopted through Social Welfare Society

Born in 1978, Arrived in America 1/23/79


엄마,

보고싶어요. 사랑해요. 미안해요. 저를 떠나 보내야 하셨을 생각을 하니, 어떤 결정도 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결정을 하셨을 엄마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파요. 그 당시 한국이 우리가 같이 살 수 없을 만큼 각박했었다니, 아마 지금도 그렇겠지요, 마음이 아프네요. 우리는 같이 살 수 있어야 했어요. 대학교에 다닐때 한국에 들어와서 엄마를 찾아 본 적이 있어요. 입양기관에는 엄마에 대한 정보가 아무것도 없었어요. 대학을 졸업하고 엄마의 나라, 제 나라를 더 알기 위해서 다시 한국에 돌아왔어요. 일년을 살았어요. 한국말도 조금 배웠어요. 좀 더 배울 걸 그랬나 봐요. 엄마를 찾게 된다면 같이 이야기를 할 수 있기를 바랬어요. 한국은 처음에는 좀 이상했는데 결국 사랑하게 되었어요. 저는 노래방을 좋아하고 떡뽁이를 좋아하고 육개장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시장통을 거닐고 처음으로 인파들 사이로 섞여 다니는 것을 좋아했어요. 저는 인사동이 제일 좋았어요. 한국이 미혼모들에게 살기 힘든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가족이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많은 여자들이 아이를 가지지만 비밀리에 포기했어요. 엄마에게 화가 나거나 원망이 있지는 않아요. 단지 엄마와 같은 사람들을 보살피지 못했던 그래서 아기를 포기해야만 했던 한국 사회에 화가 나요.

저는 운이 좋게도 두 가정이 있어요. 저는 미국에서 아주 잘 살았고 아마 엄마가 보시면 자랑스러워 할 거에요. 제 가족은 사랑이 넘치고 저를 아주 잘 키워 주셨어요. 저는 좋은 교육을 받았고 많은 멋진 기회가 제게 주어졌어요. 엄마는 세명의 아름다운 손주와 멋진 사위가 있어요. 제 결혼식에 한복을 입었고 세 아이들 모두 돌잔치도 해 줬어요. 아이들 이름은 원해, 원미, 그리고 원진이에요. 이제 저도 엄마가 되고 보니 엄마의 마음의 상처가 얼마나 컸을지 알 것 같아요. 엄마를 꼭 만나고 싶고 엄마도 손주와 사위를 만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제 아이들이 아기였을때 엄마 생각을 자주 했어요. 가끔은 아기들을 꼭 안고 엄마를 생각하면서 울기도 했어요. 제가 어떻게 자랐을지 모르는 것만으로도 엄청나게 힘드셨겠죠. 그런 엄마를 생각하면 슬퍼요. 그 고통은 제가 상상도 못할거에요. 저는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 말라는 말을 전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좋겠어요. 이제 아마 나이가 있으시겠죠. 제가 엄마를 돌보아 드릴 수 있으면 좋겠어요. 가끔 제 아이들을 볼 때면 제 아이들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아요. 항상 저처럼 생긴 가족이 있었으면 좋겠다 했거든요. 저는 엄마를 닮았을까요? 제 아이들은 엄마랑 비슷할까요? 엄마는 제 아이들을 사랑하실거에요. 엄마가 잘 지내셨으면 좋겠어요. 엄마가 제게 화가 나 계시지 않으면 좋겠어요. 혹시라도 화가 나 계시더라도 엄마 원망하지 않아요. 엄마도 잘 살아오셨으면 좋겠고, 혹시라도 제가 있음으로 해서 엄마의 삶이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엄마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엄마는 행복할 자격이 있으세요.


엄마, 보고 싶어요. 사랑해요. 미안해요.


넬리 성 (성은희)

대한사회복지회를 통해 입양됨

1978년생, 1979년 1월23일 미국 도착

1970sMinyoung 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