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Janet Petter Dennie
Dear Omma,
Mom never hid from me that I was not born as her daughter. Still, I only slowly learned what that meant, understanding a little bit here and there. When I first understood as a young child, that I had an Omma, I grieved for you. I longed to know that you were well. I tested positive for tuberculosis, and so I wondered, does that mean that you have—or had—TB? I know so little about you.
What I think I know about my life in Korea: I was left—naked—at city hall in Seoul on November 24,1960. I was given an estimated birthdate of August OO, 1958, a toddler when I was left alone on those steps. Holt Orphanage took me in and called me Hyun Anne. I had cigarette burns on my legs. So little information; so many questions about my earliest years. Where I grew up (in a small town in Michigan, a state in the middle of the USA), late November is always cold. Why was I left naked on a late November day? Perhaps another child needed my clothes? Surely you didn’t keep them all to remember me by? Or were my clothes removed to hinder identification? Or maybe they were taken by a passerby while I was alone on the steps? Maybe it wasn’t even you who brought me to City Hall; perhaps I was taken there by somebody else, maybe even abandoned without your knowledge? And why was my hair cut so short? Were the cigarette burns on my legs before I left your care?
Then I arrived in America. At first I guarded my food fiercely, but soon learned that my needs were always met. My life was good, but not free of sorrow. My dad died unexpectedly when I was 10; this time I was conscious of my world falling apart. He loved me so sweetly and I still hear his deep baritone voice singing to me. ”You are my sunshine.” As a single mother, my Mom was strong and resilient, and worked unceasingly to instill and enforce good values—to succeed; to have a place in this world; to teach me trust and love. She died recently. I was by her side as she drew her last breath, at nearly 100 years. I loved her as a daughter who was taught love by being loved. And I believe your love has been with me all of my sixty years, too.
Mom always told me that you loved me, too, my Omma. She understood your loss. Mom, who was barren, understood that you had sacrificed your own joy to send me to a place where I could be cared for. And so, I have been guided by the love of you both; I am the lucky one. Chance has been kind to me, Omma. Your arms have never released me even as I sat on those city hall steps.
Love, always,
Janet Petter Dennie
엄마에게,
양어머니께서는 제가 친딸이 아니라는 것을 한번도 숨기지 않았어요. 하지만 저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금방 알아차리지 못했고 이렇게 저렇게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어요. 아직 어렸을 당시 나에게 당신, 엄마가 있다는 것을 알았을때 참 슬펐어요. 엄마가 잘 계시는지 많이 알고 싶었어요. 저는 결핵을 앓았어요. 그래서 궁금했어요. 엄마도 그랬어요? 저는 엄마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어요.
제 한국 생활에 대해 아는 것은 이것이에요. 1960년 11월 24일에 서울 시청에 옷도 입지 않은 상태로 버려졌다는 것이에요. 생일은 1958년 8월 23일 정도로 추정된 겨우 걸음마를 하는 아이였어요. 홀트에서 저를 데리고 갔고 제 이름을 현 앤이라고 불러 주었어요. 제 다리에는 담배불 흉터가 있었어요. 궁금한 것은 많은데 아는 것은 거의 없는 제 어린 시절 이야기에요. 제가 자란 미국 미시건주의 작은 도시에서 11월 말은 항상 추웠어요. 저는 왜 11월 말경에 옷도 입지 않고 버려졌을까요? 어쩌면 다른 아이가 제 옷이 필요했을까요? 혹시 저를 기억하기 위해서 제 옷을 다 갖고 계시느라 그랬나요? 제가 누군지 혹시 누가 알까 그랬을까요? 지가나는 사람이 혼자 있는 아이의 옷을 벗겨갔을까요? 어쩌면 저를 시청에 데려간건 엄마가 아닐 수도 있었겠네요. 다른 누군가가 저를 데려 갔을까요? 어쩌면 엄마도 모르는 사이에 버려졌을 수도 있었을까요? 왜 제 머리는 그렇게 짧았을까요? 엄마가 저를 데리고 있을때부터 담배불 흉터가 있었나요?
그렇게 전 미국에 왔어요. 처음에 저는 음식을 절대 나눠주려 하지 않았대요. 하지만 금방 제가 원하는 것은 다 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저는 잘 살았지만 슬픔이 없지는 않았어요. 제 양아버지는 제가 10살때 갑작스럽게 돌아가셨어요. 그 때 저는 이세상이 무너지는 것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양아버지는 저를 많이 사랑해 주셨고 지금도 굵은 바리톤 목소리로 “당신은 나의 햇살” 이라는 노래를 불러주는 소리가 제 귀에 들리는 것 같아요. 혼자가 되신 양어머니는 강하고 꿋꿋하게 저희를 키우셨어요. 끊임없이 일하시고 저희에게 좋은 것을 가르쳐 주시려 하셨고 저희에게 사랑과 믿음을 가르쳐 주셨고 이 세상에서 저희가 살아갈 수 있게 노력하셨어요. 양어머니는 최근에 돌아가셨어요. 거의 100살로 마지막 숨을 거두실때 제가 옆에 있었어요. 제게 사랑이 무엇인지, 저를 사랑함으로써 가르쳐 주셨던 그분을 사랑했어요. 엄마의 사랑도 제 60년 일생동안 함께 해 왔어요.
양어머니는 엄마도 저를 사랑하셨다고 항상 말씀하셨어요. 엄마의 슬픔을 이해하셨어요. 제가 더 나은 곳에서 자랄 수 있도록 저를 포기하시는 것이 얼마나 큰 희생인지 잘 이해하셨어요. 두 엄마의 사랑이 저를 이끌어 왔습니다. 저는 운이 아주 좋은 것 같아요.
엄마, 지금까지 저는 운이 좋았어요. 제가 시청앞 계단에 혼자 있는 동안에도 엄마의 품은 저를 절대 놓지 않았어요. 항상 사랑해요.
자넷 페터 데니 드림